느헤미야는 바벨론의 침략 이후 130년이 넘게 무너져있던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한 인물이다. 성벽은 적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군사력의 상징만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그리고 민족의 희망과 직결된다. 과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건재하고,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미래의 상징과도 같다. 이처럼 성벽이 중요하기에,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략 이후 느헤미야의 성전 개전과 함께, 새로운 희망의 새벽을 맞이한다.
1. 축복에 담긴 사명을 발견하는 느헤미야(1-4절)
술맡은 관원은 왕의 생명을 책임지는 중요한 직책이자, 왕의 신임을 얻는 아주 높은 자리이다. 느헤미야처럼 남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은 아무 걱정없이 편안하게 살라는 개인의 축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통해 이루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겨 있다. 남보다 더 가진 것이 건강이든, 돈이든, 재능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담긴 사명적 축복이다. 느헤미야는 남보다 더 가진 것에 대해 거룩한 부담감을 느낀다. 그래서 하나냐를 통해 고향 땅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성벽이 없어 큰 환란을 만나고, 능욕을 받는 사실에 수일 동안 울면서 슬퍼하였다. 느헤미야가 느끼는 슬픔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주님의 영광까지 조롱받는 것에 대한 아픔이다.
1) 사명은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아는 것이다. 내가 남보다 더 가진 것은 무엇일까요?
2) 누군가를 향해 느헤미야와 같은 슬픔이나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2. 기도의 제단을 쌓는 느헤미야(5절)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에 느헤미야는 슬퍼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운다고 해서 환경이 변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하면 슬픔이 기쁨으로 변화된다. 기도하면 불가능이 가능케 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손길이 문제의 현장에 개입하신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와 있고, 남겨진 예루살렘도 황무지로 변한 상황이다. 현실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있어도 더 이상 그 분을 신뢰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왕을 가까이서 만난다는 자기 신분만을 믿고 느헤미야가 움직이면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아무리 높은 지위, 아무리 다급한 상황에 있어도 시작의 첫 발걸음은 기도이다.
3.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도 책임지는 느헤미야(6, 7절)
느헤미야의 기도는 과거 죄에 대한 회개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이 주 앞에서 범죄하였나이다" 이렇게만 기도하지 않고,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했다"고 고백한다. 느헤미야는 조상 잘못 만난 덕에 이방 땅에서 태어난 피해자이다. 그럼에도 다른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했다고 회개한다.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임받기 원하는 사람은 시작할 때, 크고 멋지고 완벽한 계획과 야망 전에, 모세처럼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까지 책임지겠다는 중보자적 태도가 필요하다.
1) 다른 사람의 잘못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2) 금주 설교를 통해 하나님게서 내게 하시는 도전이나 음성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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