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마가복음 3:13 - 19
제 목: 가륫 유다에게 베풀어진 은혜와 기회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예수님께서 무리 중 12명을 제자로 세웁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왜 가륫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시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요한복음 6:6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예수님은 가륫 유다가 자기를 팔 수 있음을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류 유다를 위해서라도 제자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십자가의 구원을 위해 가륫 유다를 이용하신 것처럼 보여질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구원’이란 대의를 이루겠다고 가륫 유다를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기에 인간이 현재 가진 마음의 동기와 태도 그리고, 그것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정확히 아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있다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바른 선택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도록 어떤 죄인에게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가륫 유다를 제자로 받아들인 예수님의 선택을 보면 어떨까요?
누군가는 배신의 잔을 마셔야 하기에 이루어진 선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악한 죄인이 비극적인 미래를 바꿀 수 있도록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가륫 유다가 비극적인 미래의 결말을 피할 수 있도록 최고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것이 12중 한 명이 되어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인간은 타인을 향한 분석과 예측을 통해 상대방을 향한 가능성을 포기해버리는 실수를 종종 저지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회를 주고, 관용을 베푸는 것입니다.
- 묵상 질문
1) 타인을 향한 분석과 예측으로, 마땅히 베풀어야 할 기회까지 배제시키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