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마가복음 11장 12절 – 19절(통독범위: 요한계시록 10-12장)
제 목: 고난 주간의 월요일, 죽음을 놓고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본문은 고난 주간 월요일에 일어난 사건으로, 십자가 죽음까지 예수님에게 주어진 시간은 4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땅에서의 삶이 4일 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자, 예수님은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곧장 성전으로 향하십니다. 성전으로 향하던 중 열매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도 저주합니다. 배고픈 나그네와 가난한 자를 위해 맺어야 할 작은 열매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예수님께서 성전을 향하신 중요한 이유는 기도인 것 같습니다. 성전에서 드려지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열망이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성전을 찾게 합니다.
그런데 성전은 아침부터 기도보다 장사꾼의 소리로 떠뜰썩합니다. 새 날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경배와 영광의 선포보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장사꾼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오늘날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가 내 부귀영화와 안전과 내일의 성공만을 위한 간구라면, 그 기도도 장사꾼의 목소리 같지 않을까요?
이땅에서의 삶을 4일 남겨둔 예수님은 성전에서 무엇을 기도하였을까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참조하였을 때, 기도의 방향이 삶의 연장보다 죽음을 향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많은 기도는 언제나 삶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그냥 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멋진 삶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멋진 죽음입니다.
죽음은 삶보다 힘든 과정입니다. 기도없이 멋진 삶이 불가능하다면, 기도없이 멋진 죽음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피할 수 없는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죽음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 간구가 결국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집니다. 삶을 위한 기도도 언제나 필요합니다. 그러나 고난주간의 월요일만큼은 언제가 찾아올 나의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소원하며, 예수님처럼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