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 문: 잠언 1장 20절 – 33절 / 지혜가 나를 부르는 장소
2. 묵상 구절
1) 지혜가 나를 부르는 장소는 어디 입니까? 지혜가 높이 그 소리를 발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20, 21절)
2) 어리석은 자의 퇴보와 미련한 자의 안일은 어떤 결과를 초래합니까?(32절)
퇴보(waywardness): doing only what you want
아닐(complacency): Complacency is being complacent about a situation.
*** 묵상 Tip 1
지혜는 하나님의 훈계와 교훈과 책망에 귀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24절은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책망입니다. 그들 나름 하나님의 지혜를 열심히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잘못된 장소에서 지혜를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혜가 높은 소리로 우리를 부르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길거리, 광장, 시끄러운 길목, 성문 어귀와 성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상에서 지혜가 외치고 있습니다. 지혜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 내가 자주 방문하는 장소에 있습니다. 길거리, 시끄러운 길목, 성문 어귀에 있는 대부분은 평균 또는 그 이하의 노동자 계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주님의 음성과 지혜를 들어내십니다.
일상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려면 오늘 누구를 만나든 겸손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사회적 신분이나 학식이 어떠하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해야 합니다. 선지자가 고향 땅에서는 환경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탁월한 지혜도 고향 땅에서는 거부당했습니다. 우리 또한 이런 실수에 빠지지 않으면 마음의 자세를 낮추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33절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 묵상 Tip 2
어리석은 자를 죽이는 것은 퇴보이고, 미련한 자를 멸망하게 하는 것은 안일입니다. 퇴보(waywardness)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하는 태도입니다. 오늘 하루 하기 싫은 일이라도, 예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순종의 십자가를 짊어주시기 바랍니다.
미련한 자를 죽이는 것은 안일한 태도입니다. 안일의 또다른 모습은 게으름입니다. 영국에 있으며 언어 때문에, 환경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줄어듭니다. 하지만, 게으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적은 능력이 아니라 안일한 태도입니다.
영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예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 보세요.
(마태복음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 결단과 적용
오늘 묵상을 통해 발견하는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을 무엇입니까?
오늘 묵상은 내 삶의 어떤 순종으로 연결되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