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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런던핀칠리 순복음교회

적은 내부에 있습니다.(요나서 4장 1절 - 11절)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땅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성령님께서 교회를 통해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시고, 전도와 선교의 역사를 이루신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가로막는 외부의 적이 마귀와 그를 추종하는 더러운 귀신이다. 그러나 요나서 4장은 외부만이 아니라, 교회 내부, 믿음의 공동체 안에 또다른 적이 존재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럼, 하나님의 뜻을 방행하는 내부의 적은 누구인가?


1. 시기심(2-4절)

자기만을 사랑해주고, 자신에게만 관심 가져주길 원하는 자매나 형제에게는 질투와 시기심이란 건강하지 못한 감정의 유혹이 있다. 니느웨의 회개를 바라보는 정상적인 반응은 우리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위험 속에서도 지켜주실 것이란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가 망해야만 민족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영적 시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시기심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함정이 된다. 누구를 통해서 부흥이 일어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럴 때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그 사람이 더 부흥의 주역으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부흥의 불길이 더 지속될 수 있도록 나의 힘까지 더해주는 협력이다. 이것이 겸손이다.


2. 지나친 자기사랑(자기애, 5-7절)

요나의 자기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5절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걸린 니느웨를 쳐다보면서, 요나는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모아 작은 텐트를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있다. 이런 자기 사랑은 자기 자신을 넘어 자기 가족, 자기 민족, 자기 교회란 특정 대상만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과 연결된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내 가족을 민족을 사랑하고, 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그러나 사랑이 거기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요나처럼 하나님의 뜻을 방행하는 내부의 장애물이 되어진다.


3. 내 감정이 하나님의 마음보다 앞설 때(10, 11절)

요나는 줄곧 내 힘드니, 하나님께서도 내 편 들어 달라고 떼를 쓴다. 미숙한 사람 안에는 내가 힘드니, 하나님은 내 편을 들어주고, 내 기도 제목을 무조건 응답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보다 내 감정이 앞서면 요나처럼 하나님의 뜻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주님의 마음을 차근차근 설명하신다. 이에 그가 변화되어, 그 땅의 선교사로 평생 니느웨를 위해서 살았다. 사명자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품는 것이다 . 요나서 4장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내 안에 있는 시기심, 지나친 자기 사랑, 내 감정이 하나님의 마음보다 앞세우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내부의 적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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