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열왕기하 1장 1절 - 4절
제 목: 난관을 만났을 때, 누구에게 물어보십니까?
아버지 아합이 죽은 후 왕위를 물려받은 아하시야가 어느 날, 왕궁 난간에서 떨어져 심각한 부상을 입습니다. 점점 악화되는 상처를 보며, 아하시야는 에글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병이 나을 수 있을지 신하를 보내 물어봅니다. 인간의 의술로 고칠 수 없는 상처라면 바알세불의 능력으로 고쳐달라는 의미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은 바알세불의 제사장을 찾아가는 신하에게 엘리야를 보내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에글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책망합니다. 그리고 “병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심판을 선포합니다.
너무 힘들거나 중요한 문제를 만나면, 크리스천임에도 무당을 찾아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자녀의 결혼 전 사주팔자를 보는 크리스천 부모님도 있습니다. 목회자를 찾아가면 “기도하라”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무당이나 사주팔자는 미래의 선택이나 방향에 대해 Yes, No의 구체적인 대답을 줍니다. 무당이나 사주팔자가 부분적으로는 맞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미래를 불행하게 만드는 심각한 행동입니다.
모든 인간의 삶과 죽음, 현재와 미래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아도, 그 미래를 바꿀 힘이 없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불행을 알아도 그것을 피할 힘이 없고, 미래의 행운을 알아도 그것을 손에 움켜지지 못합니다. 미래를 알면, 인간의 힘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입니다. 미래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영역입니다. (전도서 7: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그러나, 기도하면 미래를 몰라도 하나님께서 불행조차 선이 되게 하시고, 행운이 있으면 내 것이 되게 하십니다. 연약한 인간에게는 미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신뢰하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가 하나님께 묻는 모습입니다. 가야 할 길을 알 수 없을 때, 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무릎 꿇으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