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열왕기하 25장 27절 – 30절(통독범위 열왕기하 24-25장, 역대상 1장)
제 목: 그럼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재정적으로, 체력적으로, 환경적으로 무너졌을 때 기억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크리스천에게는 사업의 실패보다 도덕적 실패가 “인생이 끝났다”는 절망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회복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열왕기하의 마지막 부분은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정치적 물타기를 하던 남유다 왕국이 망하는 이야기뿐입니다. 요시야는 애굽 왕 바로느고를 반대하다 죽임을 당하고, 그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여호아하스는 바로에게 강제 폐위를 당해 애굽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여호아하스를 이어 왕이 된 여호야김은 친애굽 정치를 펼치다가 바벨론 군대의 급습으로 사망합니다. 그 다음 왕위를 계승한 여호야긴 역시 애굽 편향적인 정치를 펼치다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모든 신하들과 함께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후 왕이 된 시드기야도 친애굽 정책을 고집하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성전과 예루살렘 성이 불타면서 남유다는 종말을 고합니다.
남유다 왕국의 멸망은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정치적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는 망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포로로 끌려간 여호야긴 왕의 회복으로 막을 내립니다.
바벨론에 끌려가 감옥에서 살던 여호야긴에게는 어떤 회복의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기적이 일어납니다. 죄수의 의복을 벗고 죽을 때까지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고, 정복지의 모든 왕보다 더 높은 지위를 얻습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회복입니다. 정치적 이용 가치가 없는 여호야긴에게 왜 이런 특혜가 주어졌는지 미스터리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죽음을 생각할만큼 재기 불능의 상태라도 회복이 됩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는 자살이란 극단적인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갑니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편 118편의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18:17, 18) “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하나님은 아무리 경책하셔도 우리를 죽음에는 넘기지 않습니다. 즉, 절대 포기하고 회개하면 회복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절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고 결단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시편 기자처럼 어떤 절망과 실패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의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는 결단을 품어보시기 바랍니다.
묵상하기)
지난 삶의 여정에서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끝나지 않고 여전히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