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요한삼서 1장 1절 – 11절(통독범위: 요한삼서, 유다서)
제 목: 영혼의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는 신실한 일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요한 삼서의 수신자인 ‘가이오’는 당시 흔한 이름이었기에,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1절). 4세기 교회 전통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의 마지막 선교여행에서 드로아까지 동행했던 더베 출신의 가이오로 추정하기도 합니다(행20:4). 그는 훗날 버가모 교회의 감독으로 임명됩니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쁘하노라(절)”고 칭찬합니다. 2절의 형제들이란 5절에 등장하는 “형제 곧 나그네”입니다.
초대 교회에는 각 도시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순회 전도자들이 활동합니다. 순교 전도자들이 마을을 방문하면 정성껏 섬기는 것이 초대 교회의 신실한 전통입니다(5절). 가이오 또한 자신의 마을에 순회 전도자들이 도착하자 정성스럽게 환대합니다(3절).
본문 2절은 나그네 대접에 신실했던 가이오에 대한 사도 요한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예수님 또한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에게 준 물 한 그릇이라도 결코 상을 잃지 않습니다. 나그네 대접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함의 상급이 약속된 신실한 헌신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 나그네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디오드레베가 나타납니다(9절). 디오드레베는 나그데를 대접하지 않는 자기 행동을 정당화시키려고, 악한 말로 나그네들 비방합니다. 심지어, 나그네들을 맞이하는 자를 교회에서 내쫓기까지 합니다.
“동냥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마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남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하지 못할망정, 그들의 약점을 잡아서 헐뜯고 비난하며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행동을 합리화시킴으로 으뜸을 되려는 고약한 태도입니다.
가이오와 디오드레베는 서로 상반된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물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도 가이오처럼 신실한 모습이라고 칭찬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섬길 수 있는 따뜻함과 여유를 품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