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열왕기하 18장 17-37절
제 목: 침묵은 유약함의 표현이 아닙니다.
영국박물관의 앗수르 전시관에는 산헤립이 남유다의 라기성을 공격했던 왕궁 벽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열왕기하18:13-16)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 제국은 남유다의 라기성을 공격하였고, 그 후에는 수도 예루살렘까지 포위합니다. 앗수르 군대의 최고사령관이었던 산헤립은 굳게 닫힌 예루살렘 성을 향해 히브리말로 온갖 조롱과 모욕과 협박과 회유의 말을 외칩니다.(열왕기하 18:17-35) 이쯤되면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마디 하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그러나,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모든 백성과 신하에게 한 미디도 대꾸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침묵이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는 믿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대우나 손해를 당하면 화가 납니다. 하지만, 때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침묵해야 합니다. 세상의 논리에서 침묵은 유약함의 표현입니다. 바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무시당할 때 침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침묵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기적처럼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 승리의 첫 단추가 침묵입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도록 벙어리처럼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또한 십자가 위에서 유대인들의 조롱을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그 침묵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온 세상의 구원이 되게 하였습니다. 침묵은 약한 자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더 좋은 승리를 얻는 믿음의 방법입니다.
시험을 만났을 때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게 만듭니다. 자기를 변명하고, 힘든 상황을 토로하게 만듭니다. 말이 많으면 결국 실수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잠언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자녀들의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던 욥이 친구들과의 변론이 길어지면서 결국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만약, 히스기야 왕처럼 고난 중에 있다면 지금은 침묵할 때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마음은 시원하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못하게 막는 실수에 빠집니다. 사람과 논쟁하면 기도할 마음이 줄어듭니다. 상대방이 틀렸다 하더라도 다툰 뒤에는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침묵하면 하나님께 모든 마음을 쏟아놓을 수 있습니다. 기도로 문제를 풀어가길 원하신다면 침묵하시기 바랍니다. 그 침묵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고, 더 좋은 승리를 얻는 하늘의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