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욥기 21:1-8(통독범위: 욥기 19-22장)
제 목: 달변가가 아니라서 감사합니다.
다른 목회자를 보며 부러운 2가지가 있습니다. 찬양하는 잘 하는 것과 자기 의견을 조리있게 잘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저는 찬양에 재능이 없고, 의견을 조리있게 전달하는데도 서툽니다. 서툰 말솜씨 때문에, 다급해지면 감정이 앞서는 실수도 종종 합니다.
하지만, 욥은 친구들과의 변론에서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자기 의견을 펼칩니다. 친구가 한 마디 하면 두 배 분량의 변론을 쏟아냅니다. 욥기 21장은 친구들과의 일곱 번째 변론입니다.
어떤 시합도 7회전이 되면 지칩니다. 그러나 1대 3의 경기를 7회전까지 뛰면서 욥에게는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쯤되면, 욥은 구약 최고의 달변가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말솜씨가 훗날 하나님이 앞에서 책망의 원인이 됩니다.
이런 면에서, 서툰 말솜씨 때문에 말을 적게 하는 것도 축복입니다.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에게 결정적인 핸디캡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3번이나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기도했던 육체의 가시 즉, 질병입니다. 또하나는 서툰 말솜씨입니다.
신약 성경(27권)의 절반에 해당되는 13권을 기록한 대사도이자, 대신학자인 바울은 말에 능숙하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고린도 성도들로부터 무시를 당하였고, 바울도 솔직히 부족한 말솜씨를 인정합니다.
(고린도후서 10: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고린도후서 11: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을 가리켜, 편지(서신서)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막상 대면하면 몸도 약하고, 말도 시원치 않다고 노골적으로 무시합니다.
이 대목은 바울의 말솜씨가 평균보다 낮을 수 있음을 짐작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바울은 고린도 교회 분쟁 시, 해결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글만이 아니라 언어까지 욥처럼 달변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린도 교회 문제를 잘 해결하였을까요? 어쩌면 더 심각하게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말을 잘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 반대로 말을 잘 못한다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솜씨가 시원찮아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다고 속상해합니다.
말이 시원치 않았지만 바울은 어떤 달변가보다 훌륭하게 고린도의 분쟁을 해결합니다. 평균 이상의 말솜씨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자신의 약함 때문에 늘 기도하며 예수님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말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