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에스라 9:-15(통독범위: 에스라 7-9장)
제 목: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까?, ‘그들’이란 단어를 사용합니까?
요 며칠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기가 무섭습니다. 한 교회 목회자와 성도로 인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부정적이었던 언론은 지금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냅니다.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왜 이렇게까지 기독교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지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나의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하루는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몇 사람들이 찾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 여인을 아내 또는 며느리로 맞이하여 이방인의 가증한 행동을 따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에스라를 더 분노케 한 것은 이 죄에 지도자들과 관리들이 더욱 으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기가 막힌 지 에스라는 속옷과 컽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 제사드릴 때쯤 속옷과 컽옷을 찢은 채 무릎을 굻고 손을 듣고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에스라 9: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는 “이방인과의 결혼을 주도한 지도자들과 관리들의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그들의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친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영광만이 아니라, 잘못과 그로 인한 수치도 함께 나누는 걸머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최근 문제가 되는 교회 목회자와 성도를 향해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까? 아니면. “아무 관계가 없다”며 ‘그들’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세상 사람들처럼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고 끝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라는 단어를 쓰면 그들을 대신하여 세상에 사과합니다. 그들의 행동으로 인한 수치와 욕도 함께 감내합니다. 에스라처럼 화가 나도 그들을 위한 중보를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그럼에도 그들은 내 형제요, 내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기독교 영성은 ‘그들’이란 3인칭이 아니라, ‘우리’라는 1인칭 시점입니다. 할렐루야.